2015년 6월 3일 수요일

한자 부수 대 죽(竹) | 붓 율(聿)

    4-8. 책과 붓: 대 죽(竹) | 붓 율(聿)


대 죽(竹)
대나무 줄기와 잎




고산 윤선도의 시조 〈오우가(五友歌)〉에는 대나무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라고 표현하였는데, 고대 중국인들도 대나무를 나무나 풀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모든 나무나 풀 이름에 나무 목(木)나 풀 초(艸/艹)자가 들어가지만, 대나무는 별도로 죽(竹)자를 만들었습니다.

고대 중국인에게 대나무는 나무 중에서 가장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길고 곧은 대나무는 쉽게 휘어지는 성질이 있어, 지금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는 물건들 대부분을 대나무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나무의 용도 중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종이가 없던 시절에 종이를 대신한 것입니다.

[사진] 평양시 낙랑구역에서 발굴한 죽간

대나무 조각을 얇게 깎아 엮어서 만든 죽간(竹簡) 혹은 죽책(竹冊)에 글을 써서 책을 만들었습니다. 책 책(冊)자는 대나무 죽간을 끈으로 연결해 놓은 모습입니다. 서기 105년 후한(後漢) 중기의 채륜(蔡倫)이 종이를 발명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기록들이 죽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진시황제의 분서갱유(焚書坑儒, 책을 태우고 선비를 묻음) 때에도 대부분 죽간으로 되어 있는 책들이 불에 태워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대나무 죽(竹)자는 대나무로 만든 물건뿐만 아니라, 글과 책에 관련되는 글자에도 들어갑니다. 책 편(篇), 편지 간(簡), 문서 부(簿), 문서 적(籍) 등이 그러한 예입니다.

- 책이나 문서에 관련되는 글자(1)
▶ 편(篇:篇:) : (대나무에 적은) 책 편, 대 죽(竹) + [넓적할 편(扁)]
▶ 부(符:符:) : (대나무에 적은) 부적 부, 대 죽(竹) + [줄/붙일 부(付)]
▶ 적(籍:籍:) : (대나무에 적은) 문서 적, 대 죽(竹) + [짓밟을 적(耤)]
▶ 부(簿:簿:) : (대나무에 적은) 문서 부, 대 죽(竹) + [펼 부(溥)]

책 편(篇)자는 대나무(竹)로 만든 죽간을 넓적하게(扁) 펼친 모습입니다. 책이라는 뜻도 있지만, 1편, 2편, 3편 등 책을 세는 단위로도 사용됩니다. 천편일률(千篇一律)은 '천(千) 편의 책(篇)이 하나(一)의 법(律)으로 되어 있다'는 뜻으로, 모두 비슷하여 개별적 특성이 없음을 이릅니다. '옥(玉)같이 귀중한 책(篇)'이란 뜻을 가진 옥편(玉篇)은 원래 중국 양나라의 고야왕(顧野王, 519∼581년)이 학자들을 시켜 만든 한자 자전(字典)의 이름이었습니다. 이후 한자 자전을 옥편이라 불렸습니다.

부적 부(符)자는 '귀신을 쫓기 위해 그림이나 글씨를 써서 붙이는(付) 대나무(竹)'란 뜻입니다. 종이가 없던 시절부적(符籍)은 대나무에 썼지만, 지금은 종이나 복숭아나무 조각에도 씁니다. 복숭아나무는 귀신을 쫓는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적(書籍), 부적(符籍) 등에 사용되는 문서 적(籍)자는 원래 대나무 죽간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이후 '문서(文書)→서적(書籍)→호적(戶籍)→신분(身分)→등록(登錄)하다' 등의 뜻이 파생되었습니다. 신분이나 등록이란 뜻으로 쓰인 예로 국적(國籍), 호적(戶籍), 본적(本籍), 제적(除籍) 등이 있습니다.

문서 부(簿)자는 '죽간(竹)을 펼쳐(溥) 놓은 문서'라는 뜻입니다. 졸업생이나 동창생 명부(名簿), 돈의 출입을 기록한 장부(帳簿) 등에 사용됩니다.

- 책이나 문서에 관련되는 글자(2)
▶ 간(簡:简:) : (대나무에 적은) 대쪽/편지 간, 대 죽(竹) + [사이 간(間)]
▶ 답(答:答:) : (대나무에 적은) 대답 답, 대 죽(竹) + [합할 합(合)→답]
▶ 범(範:范:) : (대나무에 적은) 법 범, 수레 차(車) + [법 범(笵)]
▶ 제(第:第:) : (책의) 차례 제, 대 죽(竹) + [아우 제(弟)]
▶ 책(策:策:) : (대나무에 적은) 꾀 책, 대 죽(竹) + [가시나무 자(朿)→책]

대쪽 간(簡)자는 원래 대쪽(대나무 조각)이라는 뜻입니다. 이후 '대쪽→(대쪽에 쓴) 문서나 편지→(대쪽이라 편지가) 간략하다'라는 뜻이 생겼습니다. 간(簡)자에는 사이 간(間)자가 들어 있는데, '간략하게 글을 쓴 대쪽(竹)을 두 사람 사이(間)에 주고받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내간체(內簡體)는 '집 안(內)의 부녀자들이 편지(簡)에 사용한 문체(體)'입니다. 옛날에는 부녀자의 바깥 출입이 드물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주로 편지로 소통을 하였습니다. 《인현왕후전》과 《한중록》이 대표적인 내간체 작품입니다. 간결체(簡潔體)는 '간단(簡)하고 깨끗한(潔)한 문체(體)'로, <감자>를 지은 김동인과 <소나기>를 지은 황순원의 소설이 대표적인 간결체 소설입니다.

대답 답(答)자는 '대나무(竹)쪽 에 쓴 편지의 회답(回答) 혹은 대답(對答)'을 의미합니다. 회답으로 보내는 편지를 답신(答信)이라고 합니다. 정답(正答)은 '바른(正) 답(答)'이고, 오답(誤答)은 '틀린(誤) 답(答)'입니다.

규범(規範)에 사용되는 법 범(範)자에 들어 있는 법 범(笵)자는 대 죽(竹)자와 소리를 나타내는 넘칠 범(氾)자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책(竹)에 법(法)을 기록한 데에서 법(法)이란 뜻이 생겼습니다. 이후 물 수(氵)자 대신 수레 차(車)자가 붙었는데, 옛날 높은 사람들이 밖에 나갈 때 수레로 개를 치어 바퀴에 피를 묻혀 액막이를 했는데, 이것을 범(範)이라 하였습니다. 하지만 범(笵)자의 원래 뜻이 살아나 법이란 뜻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본보기라는 뜻도 생겼는데, 모범(模範)이 그러한 사용의 예입니다.

차례 제(第)자는 순서대로 연결한 죽간이란 의미로, '순서→차례→등급→(등급이 높아) 합격하다'는 뜻이 생겼습니다. 제일(第一)은 '차례(第)에서 첫(一) 번째'라는 뜻으로, 가장 훌륭하다는 뜻이고, 장원급제의 급제(及第)는 '합격(第)에 이르다(及) '는 뜻입니다. 반면 낙제(落第)는 '등급(第)에서 떨어지다(落)'는 뜻입니다.

꾀 책(策)자는 원래 '죄인들을 때리는데 사용한 대쪽(竹)이나 가시나무(朿)로 만든 채찍'을 이르는 말이었습니다. 이후 '채찍→대쪽→(대로 만든) 책→(대로 만든) 산가지→(숫자를) 헤아리다→예측하다→꾀, 계책(計策)' 등의 많은 뜻이 파생되었습니다. 책려(策勵)는 '채찍질(策)하여 독려(督勵)하다'는 뜻이고, 책사(策士)는 제갈공명같이 '책략(策略)을 잘 쓰는 선비(士)'를 이릅니다.

[사진] 중국 최고의 책사(策士) 제갈공명

- 대나무로 만든 물건
▶ 필(筆:笔:) : (대나무로 만든) 붓 필, 대 죽(竹) + 붓 율(聿)
▶ 관(管:管:) : (대나무로 만든) 대롱 관, 대 죽(竹) + [벼슬 관(官)]
▶ 적(笛:笛:) : (대나무로 만든) 피리 적, 대 죽(竹) + [말미암을 유(由)→적]
▶ 전(箭:箭:) : (대나무로 만든) 화살 전, 대 죽(竹) + [앞 전(前)]

대나무로 만든 물건은 바구니, 새장, 키, 장대, 낚싯대, 삿갓 등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플라스틱이나 가벼운 금속에 밀려 대나무로 만든 물건을 보기도 힘들뿐더러 관련 한자도 사용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는 아직도 사용되는 글자만 몇 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붓 필(筆)자에 들어가는 붓 율(聿)자는 손(彐)으로 붓을 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입니다. 나중에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대나무 죽(竹)자가 추가되어 붓 필(筆)자가 되었습니다. 붓 필(筆)자의 간체자를 보면 붓이라는 느낌이 더욱 살아납니다. 간체자인 붓 필(笔)자는 '대나무(竹)에 털(毛)이 붙어 있다'는 뜻으로 만든 글자입니다. 칠판에 글을 쓰는 분필(粉筆)은 '흰 가루(粉)가 나는 붓(筆)'입니다. 필석(筆石)은 '분필(筆)로 사용할 수 있는 화석(石)'으로 고생대의 바닷속에 살던 풀잎처럼 생긴 동물의 화석입니다. 빛이 희고 반짝이는 화석인데, 분필처럼 쓸 수 있어서 필석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수도관(水道管)으로 사용되는 파이프(pipe)를 지금은 플라스틱이나 금속으로 만들지만, 예전에는 모두 대나무로 만들었습니다. 대롱 관(管)자의 대롱은 파이프(pipe)의 순우리말입니다. 모세관현상의 모세관(毛細管)은 '털(毛)처럼 가는(細) 관(管)'이고, 모세혈관(毛細血管)은 '털(毛)처럼 가는(細) 혈관(血管)'입니다.

피리도 대나무 관으로 만들기 때문에 피리 적(笛)자에도 대 죽(竹)자가 들어갑니다. 만파식적(萬波息笛)은 '수많은(萬) 파도(波)를 쉬게(息) 하는 피리(笛)'로,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설화에 나오는 신라의 피리입니다. "왕이 이 피리를 부니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해결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림] 영화 〈신기전(神機箭)〉의 한 장면

화살 전(箭)자는 '앞(前)으로 날아가는 대나무(竹)가 화살'이라는 뜻으로 만든 글자입니다. 신기전(神機箭)은 '귀신(神)과 같은 기계(機)로 쏘는 화살(箭)'이란 뜻입니다. 1448년(세종 30년)에 만든 로켓추진 화살로, 고려 말기에 최무선이 제조한 로켓형 화기를 개량한 것입니다. 어전세(漁箭稅)는 '물고기를 잡기(漁) 위해 화살(箭)로 만든 어망을 쓰는 것에 대한 세금(稅)'이란 뜻으로 조선 시대 관청에서 어전(漁箭)을 설치한 후, 가난한 백성들이 여기에서 물고기를 잡게 하고 받은 세금입니다.

[그림] 화살과 같은 대나무를 물속에 꽂아 만든 어전(漁箭)

- 기타
▶ 절(節:节:) : (대나무의) 마디 절, 대 죽(竹) + [곧 즉(卽)→절]
▶ 근(筋:筋:) : 힘줄 근, 대 죽(竹) + 고기 육(肉/月) + 힘 력(力)
▶ 산(算:算:) : 셈 산, 대 죽(竹) + 눈 목(目) + 손 맞잡을 공(廾)
▶ 등(等:等:) : 무리/같을 등, 대 죽(竹) + 절 사(寺)
▶ 소(笑:笑:) : 웃음 소, 대 죽(竹) + [어린아이 오(夭)→소]
▶ 독(篤:笃:) : 도타울 독, 대 죽(竹) + 말 마(馬)

마디 절(節)자는 대나무(竹)의 마디를 뜻하는 글자입니다. 이후 '마디→단락(段落)→절기(節氣)→명절(名節)' 등의 뜻이 파생되었습니다. 즉, 대나무의 마디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절기(節氣)나 계절(季節)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개천절(開天節), 제헌절(制憲節), 성탄절(聖誕節)의 절(節)자는 명절(名節)이란 뜻입니다. 또 쪼개 놓은 대나무는 잘 굽어지지만 마디 주변은 굽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절개(節槪)라는 뜻도 생겼습니다. 절리(節理)는 '암석에 있는 마디(節)나 무늿결(理)'이란 뜻으로 보통 규칙적으로 갈라져 있는 틈새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절리는 모양에 따라 주상절리(柱狀節理: 기둥 모양의 절리)와 판상절리(板狀節理: 판 모양의 절리)가 있습니다.

근육(筋肉), 근력(筋力)에 들어가는 힘줄 근(筋)자는 '힘(力)을 주면 대나무(竹)처럼 딱딱해지는 고기(肉/月)가 힘줄이다'는 의미입니다. 철근(鐵筋)은 '쇠(鐵)로 만든 힘줄(筋)'이란 뜻으로 콘크리트 건물에서 힘줄 역할을 합니다.

셈 산(算)자는 '두 손(廾)으로 대나무(竹)로 만든 산가지를 들고 눈(目)으로 보며 수를 셈하다'는 뜻입니다. 계산(計算)은 '수를 헤아리거나(計) 셈(算)을 하다'는 뜻입니다.

무리 등(等)자는 '관청(寺)에서 죽간(竹)을 가지런히 정리하다'는 뜻입니다, 절 사(寺)자는 원래 관청이란 뜻이 있습니다. 이후 '가지런하다→같은 것끼리 모으다→같다→(같은 것을 모아놓은) 무리→(무리를) 구별하다→등급(等級)' 등의 뜻이 생겼습니다. 등급(等級)은 '좋고 나쁨의 차를 구별하여(等) 나눈 급수(級數)'입니다. 초등(初等), 중등(中等), 고등(高等), 석차가 일등(一等), 이등(二等), 삼등(上等), 내신 성적 일등급(一等級), 이등급(二等級), 삼등급(上等級), 우등생(優等生), 열등생(劣等生) 등에 사용되는 등(等)자는 모두 등급(等級)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보니 학교는 공부를 가르치는 곳이라기보다는 등급을 나누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학 시간에 나오는 등호(等號)는 '같음(等)을 나타내는 기호(記號)'이고, 등신불(等身佛)은 '사람의 몸(身)과 크기가 같은(等) 불상(佛)'으로 1961년 소설가 김동리(金東里, 1913~1995)가 지은 소설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옛날 만적이란 스님이 자신의 몸을 불살라 부처님께 바쳤는데, 타고 남은 몸에 금물을 입혀 등신불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웃을 소(笑)자는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竹)의 소리가 웃는 소리와 비슷하고, 어린아이(夭)가 잘 웃는다'고 해서 '웃다'는 뜻입니다. 박장대소(拍掌大笑)는 '손바닥(掌)을 치며(拍) 크게(大) 웃는다(笑)'는 뜻입니다.

죽마(竹馬: 대나무로 만든 말)를 타고 함께 놀던 오랜 친구를 죽마고우(竹馬故友)라고 부릅니다. 도타울 독(篤)자는 죽마(竹馬)를 함께 타고 놀던 도타운 친구라는 의미입니다.

- 죽간과 간련되는 글자
▶ 책(冊:册:) : 책 책, 죽간을 이어 놓은 모습
▶ 전(典:典:) : 법 전, 책 책(冊) + 손맞잡을 공(廾)
▶ 편(扁:扁:) : 넓적할 편, 지게문 호(戶) + 책 책(冊)
▶ 편(篇:篇:) : 책 편, 대 죽(竹) + [넓적할 편(扁)]
▶ 편(編:编:) : 엮을 편, 실 사(糸) + [넓적할 편(扁)]
▶ 륜(侖:仑:) : 둥글 륜, 모을 집(亼) + 책 책(冊)

☞ 책 책(冊)

대나무 죽간을 연결하여 만든 모습의 상형인 책 책(冊)자가 들어가는 글자들도 살펴보겠습니다. 책 책(冊)자의 상형문자를 보면 대나무 죽간(||||)을 끈(○)으로 묶어놓은 형상입니다.

법 전(典)자는 원래 두 손(廾)으로 공손하게 책(冊)을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후 '책→경전(經典)→법전(法典)→법'이란 뜻이 파생되었습니다. 17~18세기 근대 유럽에서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였던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예술 작품을 모범으로 삼아 미술, 음악, 건축, 문학 등을 창작하려던 고전주의(古典主義)는 '옛날(古) 책(典)을 따르는 주의(主義)'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고전(古典)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책이란 뜻입니다. 즉 신 중심의 중세 기독교 사상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그리스 로마 사상으로 회귀하는 주의입니다. 고전(classic)이란 말을 들으면 먼저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당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고전 음악이 탄생되었던 당시 유럽의 음악은 종교 음악 또는 교회 음악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모짜르트나 베토벤으로 대표되는 고전 음악은 이러한 종교적인 색체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마도 매일 듣던 교회 음악에서 벗어난 신선함은, 요즘에 비교하면 힙합(Hip Hop) 또는 랩(Rap)과 비슷한 충격을 주었으리라 짐작됩니다.

넓적할 편(扁)자는 원래 문(戶)에 거는 대나무 패(冊)를 뜻하는 글자입니다. 이후 '패→현판(懸板)→작다→넓적하다→편평(扁平)하다' 등의 뜻이 파생되었습니다. 편형동물(扁形動物)은 '편평한(扁) 형상(形)을 가진 동물(動物)'로 플라나리아(planaria), 촌충(寸蟲) 등과 같이 몸이 길고 편평(扁平)한 동물입니다. 대개 항문이 없고 암수 한몸입니다.

[사진] 편형동물(扁形動物)의 일종인 플라나리아

넓적할 편(扁)자에 대 죽(竹)자를 추가한 책 편(篇)자는 '대나무(竹)로 만든 죽간을 넓적하게(扁) 펼친 것이 책이다'는 뜻입니다.

넓적할 편(扁)자에 실 사(糸)자가 추가된 엮을 편(編)자는 '책을 만들기 위해 죽간을 넓적하게(扁) 실(糸)로 역다'는 뜻입니다. 편집(編輯)은 '죽간을 모아서(輯) 실로 엮어(編) 책을 만들다'는 뜻입니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은 공자가 《주역(周易)》을 좋아하여, 너무 여러 번 읽은 나머지 '가죽(韋) 끈(編)이 3(三)번이나 끊어졌다(絶)'는 뜻입니다. 고등학교 때 이 고사성어를 배우면서, '책을 여러 번 읽으면 책을 엮은 가죽 끈이 끊어지기 전에 종이가 먼저 닳거나 찢어지지 않을까?'라고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공자가 살았을 당시 종이로 만든 책은 없었습니다.

둥글 륜(侖)자는 '죽간(冊)을 모아둘(亼) 때 둥글게 말아 둔다'는 뜻에서'둥글다'는 의미가 생겼습니다. 모일 륜(侖)자는 독자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다른 글자를 만나 소리로 사용됩니다. 바퀴 륜(輪), 인륜 륜(倫), 산이름 륜(崙), 빠질 륜(淪), 논의할 론(論) 자가 그러한 예입니다.



붓 율(聿)
붓을 손으로 잡고 있는 형상




붓 율(聿)자는 손(彐)으로 붓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입니다. 중앙의 'ㅣ'는 붓대를, 아래의 '二'는 붓에서 난 털을 나타냅니다. 붓 율(聿)자는 글이나 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되므로 그런 의미의 글자에 들어갑니다.

- 붓과 관련되는 글자
▶ 필(筆:笔:) : 붓 필, 대 죽(竹) + 붓 율(聿)
▶ 서(書:书:) : 글 서, 붓 율(聿) + 벼루 모습(曰)
▶ 화(畵:画:) : 그림 화, 그을 획, 붓 율(聿) + 그림 모습(田+凵)
▶ 화(畫:画:) : 그림 화, 그을 획, 붓 율(聿) + 그림 모습(田+一)
▶ 획(劃:划:) : 그을 획, 칼 도(刂) + [그을 획(畫)]
▶ 주(晝:昼:昼) : 낮 주, 날 일(日) + 그림 화(畫)

붓은 대나무로 만들기 때문에 붓 율(聿)자에 대나무 죽(竹)자가 추가되어 붓 필(筆)자가 되었습니다. 지필고사(紙筆考査)는 '종이(紙)와 연필(筆)로 치는 고사(考査)'입니다. 지필고사가 아닌 시험으로는 면접시험이나 실기시험이 있습니다. 필통(筆筒)은 원래 '붓(筆)을 꽂아 두는 대나무 통(筒)'이지만, 이제는 '연필(筆)을 넣어 두는 플라스틱 통(筒)'입니다.

[사진] 붓을 꽂아두는 필통(筆筒)

글 서(書)자는 붓(聿)과 벼루(曰)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입니다. 여기에서 가로 왈(曰)자는 그냥 벼루의 모습일 뿐입니다. 지금은 누구나 글을 쓰고 읽을 수 있지만, 옛날에는 글만 쓸 줄 알아도 관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중서성(中書省)은 '중앙(中)에서 글(書)을 쓰는 관청(省)'이란 뜻으로, 중국의 수, 당, 송, 원나라와 우리나라의 고려 시대에 중앙(中央)에서 각종 정책과 제도, 황제의 명령 등을 글로 작성하여 올린다고 해서 중서성(中書省)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림 화(畵)자는 화(畫)자로 쓰기도 합니다. 이 글자는 붓(聿)으로 그림(田+凵)을 그리는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입니다. 이후 '그리다→계획(計劃)하다→꾀하다'라는 뜻이 생겼고, 또 '그림→그리다→(선을) 긋다→(선을 그어) 분할(分割)하다'라는 뜻도 생겼습니다. '긋다, 분할하다'는 뜻을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해 칼 도(刂)자를 추가해서 그을 획(劃)자도 만들었습니다. 도화지(圖畵紙)는 '그림(圖)을 그리는(畵) 종이(紙)'이고, 획일주의, 획일교육, 획일적 등에 나오는 획일(劃一)은 '선 하나(一)를 긋는다(劃)'는 뜻으로, 개인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하나의 틀에 넣어 똑같이 고르게 만들려는 것을 말합니다.

낮 주(晝)자는 그을 획(畫)의 변형 자와 날 일(日)자가 합쳐진 글자로 '하루를 해가 있는 시간과 없는 시간으로 분할하면(畵), 해(日)가 있는 시간이 낮이다'라는 뜻입니다. '낮(晝)에는 밭을 갈고(耕) 밤(夜)에는 글을 읽다(讀)'는 뜻의 주경야독(晝耕夜讀)은 바쁜 틈을 타서 글을 읽어 어렵게 공부함을 일컫는 말입니다.

- 기타
▶ 진(盡:尽:尽) : 다할 진, 그릇 명(皿) + 솔의 모습
▶ 률(律:律:) : 법 률, 걸을 척(彳) + [붓 율(聿)→률]
▶ 건(建:建:) : 세울 건, 길게걸을 인(廴) + 붓 율(聿)
▶ 숙(肅:肃:) : 엄숙할 숙, 고슴도치머리 계(彐)

글 서(書)자나 그림 화(畵)자와 비슷하게 생긴 다할 진(盡)자는 손(彐)에 솔을 들고 그릇(皿)을 씻는 모습입니다. 글 중간에 들어가는 4점(灬)은 솔에 붙은 털의 모습입니다. '그릇에 찌꺼기를 남김없이 깨끗하게 씻다'고 해서 '다하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는 '쓴(苦)맛이 다하면(盡) 단(甘)맛이 온다(來)'는 뜻으로 '고통 뒤에 낙이 온다'는 의미입니다.

법률(法律)이나 율법(律法)에 사용되는 법 률(律)자는 '사람이 갈(彳) 길을 붓(聿)으로 적어 놓은 것이 법이다'라는 뜻입니다. 이후 법→법칙(法則)→규칙(規則)→음률(音律) →가락' 등의 뜻이 생겼습니다. '큰(大) 명(明)나라의 법(律)'이란 뜻의 대명률(大明律)은 중국 명(明)나라의 기본 법전입니다. 조선 시대의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의 형벌법은 대명률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율동(律動)은 '규칙적(律)인 운동(運動)'이나 '가락(律)에 맞추어 움직이는(動) 춤'을 말합니다.

[사진] 대명률(大明律)

건물(建物), 건축(建築), 건국(建國)등에 들어가는 세울 건(建)자는 '사람이 걸어가듯이(廴) 붓(聿)을 세워서(建) 글을 쓰다'는 뜻입니다. 혹은 '도로(廴)를 건설(建設)하기 위해 붓(聿)으로 설계도를 그리다'에서 세울 건(建)자가 유래한다고도 합니다. 길게 걸을 인(廴)자는 '발과 길'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입니다.

☞ 엄숙할 숙(肅)

엄숙(嚴肅), 정숙(靜肅)에 사용되는 엄숙할 숙(肅)자는 손으로 붓(聿)을 들고 무언가를 그리는 모습입니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엄숙한 분위기에서 하고 있어서 '엄숙하다'는 의미가 생긴 것 같습니다. 숙정문(肅靖門)은 '엄숙(肅)하고 편안한(靖) 문(門)'이란 뜻으로, 조선 시대 서울 사대문 중의 하나인 북대문입니다. 동서남북(東西南北)의 사대문의 이름에는 각각 인의예지(仁義禮智)에서 한 글자씩을 넣었습니다. 즉, 동대문은 흥인지문(興仁之門: 仁이 크게 일어나는 문), 서대문은 돈의문(敦義門: 義를 도탑게 하는 문), 남대문은 숭례문(崇禮門: 禮를 숭상하는 문), 북대문은 홍지문(弘智門: 智를 크게 하는 문)으로 지었습니다. 그런데 북대문의 이름에 지혜로움을 의미하는 '지(智)'가 들어가면 백성이 지혜로워져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어려워진다 하여 '홍지문(弘智門)→숙청문(肅淸門)→숙정문(肅靖門)'으로 바뀌었습니다.

★★★★★★★★ 글자를 90도 돌려 쓰는 이유

동물을 나타내는 글자의 상형문자를 보면 뿔을 강조한 소 우(牛), 양 양(羊), 사슴 록(鹿)자를 제외한 나머지 동물(개, 돼지, 코끼리, 말, 범, 거북 등)은 모두 90도 회전시켜 그려 놓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상형문자를 보는 사람들은 개나 돼지가 네 발을 땅에 붙이지 않고, 왜 사람처럼 서 있는지를 궁금해 합니다.

[사진] 개의 모습을 본떠 만든 개 견(犬)자

옛 중국에서는 한자를 아래로 썼기 때문입니다. 만약 폭이 넓은 글자가 있으면 옆으로 삐져나와 줄과 줄 사이가 넓어지게 되고, 따라서 글자를 많이 쓸 수 없게 됩니다. 더욱이 죽간은 폭이 1~2cm 정도이므로 폭이 넓은 글자는 쓸 수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폭을 넓게 차지하는 동물의 상형문자는 모두 90도 회전하여 그려 놓은 것입니다. 같은 이유로 침대의 상형인 장(爿)자도 침대를 수직으로 세워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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