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기 몸 기(己)자가 어떤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인지는 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가장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모습은 상체를 구부리고 꿇어 앉아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나타내는 글자인 인(儿), 비(匕), 대(大), 립(立), 시(尸), 절(卩), 자(子), 여(女), 노(老/耂) 등 모든 글자의 상형문자를 보면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의 팔입니다. 하지만 몸 기(己)자는 사람의 팔이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장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는 기(己)자가 끈이나 새끼줄을 꼬아놓은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옛날에 문자가 탄생되기 전에는 끈이나 새끼줄에 매듭을 만들어 문자를 대신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문자를 '끈(繩)을 묶어(結) 만든 문자(文字)'라는 뜻으로 결승문자(結繩文字)라고 하며, 고대 중국과 남아메리카 지방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중국의 결승이 어떤 것인지는 오늘날에 와서는 알 수 없으나, 고대 남아메리카의 결승문자는 아직도 남아 있고, 페루의 키푸(quipu)가 대표적입니다. 기(己)자에 실 사(糸)자를 더하면 벼리 기(紀)자가 되는데, 벼리 기(紀)자는 '적다, 기록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또 말씀 언(言)자를 추가하면 '말(言)을 기록하다'는 뜻의 기록할 기(記)자가 됩니다. 이런 글자로 미루어 보면, 기(己)자가 결승(結繩)을 위한 끈이나 새끼줄의 상형이라는 설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어쨌든 나중에는 몸 기(己)자가 꿇어앉아 있는 사람의 몸이란 뜻을 가지게 됩니다. 더 나아가 자기(自己)라는 뜻도 가지게 됩니다.
■ 기로 소리나는 경우
▶ [7/5] 記 기록할 기 [중]记 [jì] 말씀 언(言) + [몸 기(己)] ▶ [4/4] 起 일어날 기 [중]起 [qǐ] 달릴 주(走) + [몸 기(己)] ▶ [4/3] 紀 벼리 기 [중]纪 [jì] 실 사(糸) + [몸 기(己)] ▶ [3/2] 忌 꺼릴 기 [중]忌 [jì] 마음 심(心) + [몸 기(己)] ▶ [1/1] 杞 구기자나무 기 [중]杞 [Qǐ] 나무 목(木) + [몸 기(己)]
기사(記事), 수기(手記), 일기(日記) 등에 사용되는 기록할 기(記)자는 '사람의 말(言)을 기록하다'는 뜻입니다.일기(日記)는 '날마다(日) 적는 기록(記)'이고, 사성삼경 중 하나인 《예기(禮記)》는 '고대 중국의 관혼상제 등의 예법(禮法)을 기록한(記) 책'입니다.
기상(起床), 기립(起立), 기공식(起工式) 등에 사용되는 일어날 기(起)자는 '꿇어앉아 있는 사람(己)이 가기(走) 위해 일어나다'는 뜻입니다. 《기중도설(起重圖說)》은 '무거운(重) 물건을 일으켜(起) 세우는 방법을 그림(圖)으로 설명한(說) 책'으로, 조선시대의 실학자 정약용이 1792년에 지은 책입니다. 이 책에는 정약용이 만든 거중기(擧重機)의 그림이 실려 있습니다. 기상(起床)은 '평상(床), 즉 침대에서 일어나다(起)'는 뜻입니다.
벼리 기(紀)자에서, 벼리는 그물 가장자리의 굵은 줄로, 그물을 잡아당기는 줄입니다. 줄을 의미하는 글자에는 실 사(糸)자가 들어갑니다. 이후, '벼리→(벼리로 그물을) 다스리다→통치하다→규제하다→(인간을 규제하는) 도덕이나 규범'이라는 뜻도 생겼습니다. 벼리 기(紀)자와 벼리 강(綱)자가 합쳐진 기강(紀綱)은 '모든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덕과 규범'이란 뜻입니다. 군기(軍紀)는 군대의 질서 유지를 위한 기본 규범입니다. 또 세월이나 해라는 뜻도 있습니다. 기원(紀元)은 '해(紀)를 헤아리는 시초(元)'이고, 중생대 삼첩기(三疊紀), 쥐라기(Jurassic紀), 백악기(白堊紀) 등에서는 지질의 연대를 일컫습니다. 삼첩기(三疊紀)는 ‘세(三) 개의 층이 중첩된(疊) 시기(紀)’라는 뜻으로, 육성층-해성층-육성층 등이 3개 층이 중첩되어 나타난 시기입니다. 트라이아스기(Trias紀)리고도 합니다. 쥐라기(Jurassic紀)는 ‘프랑스와 스위스 사이의 쥐라(Jura) 산맥이 만들어진 시기(紀)’로, 숲과 공룡이 번성했습니다. 쥐라(Jura)는 숲이란 뜻입니다. 백악기(白堊紀)는 ‘흰(白) 백토(堊)가 지층을 이룬 시기(紀)’로, 중생대의 마지막 지질 시대입니다.
또 앞의 결승문자에서 이야기했듯이, 벼리 기(紀)자는 '적다, 기록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제왕운기(帝王韻紀)》는 '황제(帝)와 왕(王)의 사적을 운율(韻)을 넣어 적은(紀) 책'으로, 고려의 학자인 이승휴가 지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사책입니다.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는 '사건(事)을 본말(本末: 시작과 끝)을 적은(紀) 문체(體)'로, 사건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방법입니다.
꺼릴 기(忌)자는 '몸(己)과 마음(心)이 모두 꺼리다'는 뜻입니다. 이후, '꺼리다→싫어하다→미워하다→시기(猜忌)하다' 등의 뜻이 생겼습니다. 기일(忌日)은 '꺼리는(忌) 날(日)'이란 뜻으로 조상이 죽은 날을 말하며, 기제사(忌祭祀)는 '기일(忌日)에 지내는 조상의 제사(祭祀)'입니다. 병역기피(兵役忌避)는 '병역(兵役)을 꺼리어(忌) 피하다(避)'는 뜻으로,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하는 일을 말합니다.
구기자(枸杞子)나무는 차나 약의 재료로 사용하는 구기자가 열리는 나무입니다. 구기자나무 기(杞)자는 나라 이름으로도 사용됩니다. 기우(杞憂)는 '기(杞)나라 사람의 근심(憂)'이란 뜻입니다. 중국의 기(杞)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까봐 침식을 잊고 근심 걱정하였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는데, 쓸데없는 걱정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 개로 소리나는 경우
▶ [5/4] 改 고칠 개 [중]改 [gǎi] 칠 복(攵) + [몸 기(己)→개]
교육의 목적이 사람을 고치거나 변하게 만드는 것이며, 이런 목적을 위해서 매로 때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옛 중국 사람들은 생각하였고, 몇 천 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그리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고칠 개(改)자는 '꿇어앉아 있는 사람(己)을 매로 때려서(攵) 잘못된 것을 고치다'는 뜻입니다. 창씨개명(創氏改名)은 '성씨(氏)를 만들어(創) 이름(名)을 고치다(改)'는 뜻으로, 일제강점기에 이름을 일본식 이름으로 강제로 바꾸게 한 일입니다. 개정(改定), 개선(改善), 개량(改良) 등에 사용됩니다. 갑오개혁(甲午改革)은 ‘갑오(甲午)년에 실시한 개혁(改革)’으로, 1894년 7월(고종 31년)부터 1896년 2월(고종 33년) 사이에 추진되었던 개혁 운동입니다. 개화당이 정권을 잡아 3차에 이르는 개혁을 통하여, 정치, 경제, 사회 전반적인 면에서 조선의 전통적인 제도를 새롭게 변화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가장 큰 변화가 양반, 서민, 노비 등의 신분을 없앤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갑오개혁을 통하여 근대적인 제도를 갖춘 나라로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 비로 소리나는 경우
▶ [3/2] 妃 왕비 비 [중]妃 [fēi] 여자 녀(女) + [몸 기(己)→비]
왕비 비(妃)자는 원래 '남자 앞에 꿇어앉아 있는(己) 여자(女)가 아내이다'는 뜻입니다. 이후 왕의 아내인 왕비(王妃)라는 뜻이 생겼습니다. 대비(大妃)는 왕의 어머니이고, 대왕대비(大王大妃)는 왕이 할머니입니다. 비빈(妃嬪)은 '왕비(妃)와 궁녀(嬪)'입니다.
■ 배로 소리나는 경우
▶ [4/3] 配 짝 배 [중]配 [pèi] 닭 유(酉) + [몸 기(己)→배]
짝 배(配)자는 술(酉) 옆에 사람이 꿇어않아 있는 사람(己)의 모습입니다. 닭 유(酉)자는 술병의 상형으로, 술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옛날에 결혼식을 할 때 술(酉)을 나누어 마시면서 짝을 맞이하는 데에서 '(술을) 나누다, 짝짓다'라는 뜻이 생겼습니다. 분배(分配), 배정(配定)에서는 '나누다', 배우자(配偶者), 배필(配匹)에서는 '짝짓다'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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